판소리계 소설 DownLoad
◈. 판소리의 형성과 전개
판소리는 조선후기에 들어와서 형성되고 완성된 예술양식이다. 대체로 18세기 초반인 숙종 말이나 영조 초기에 판소리가 형성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초기에는 가곡이나 가사, 줄타기, 땅재주 등 민속연희가 한바탕을 이루어 공연되는 가운데 그 중의 한 과정으로 불렸었다. 전문적인 창자가 고수의 북장단에 맞춰서 소리를 짜서 불렀으며, 청중들은 대부분 서민들이었다.
원래 판소리는 민간 층에서 전승되는 설화에 기반을 두고 형성된 것이었다. 광대는 설화의 내용을 확대하고 듣는 이들의 관심과 기호에 따라 창이나 연기에 대한 기교까지 덧보태어 한편의 긴 서사적인 연극을 완성하여 수련을 거쳐 공연하였던 것이다.
근원설화판소리고전소설신소설구토설화수궁가토끼전토끼의 간효녀지은설화심청가심청전강상연(江上蓮)방이설화흥부가흥부전연(燕)의 각(脚) 열녀설화, 암행어사설화춘향가춘향전옥중화(獄中花)
애초의 판소리의 기반은 평민 대중들이었다. 소리하는 광대의 신분도 그렇거니와, 판소리를 향유하는 층이 민중들이었기 때문에 자연히 사설의 내용도 그들의 현실적 관심을 재현하여 판소리로 불렀다. 보수적인 양반들과는 적대적인 위치에 있던 판소리의 광대들이 판소리가 연행되는 현장에서 양반을 비롯한 지배층의 비리를 고발하고 신분제의 모순을 폭로하는 한편, 민중들의 살아가는 현실에 부합하는 내용을 노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1. 양반들의 참여
19세기에 오면 양반들도 판소리를 즐기게 되며, 판소리의 변모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된다. 특히 판소리의 향유층은 평민 대중에서부터 양반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을 망라한 청중을 확보하게 되었다. 이 무렵에는 양반들이 판소리의 좌상객으로 많이 참여하게 되었고 과거에 급제하면 광대들을 불러 놀이를 시키는 것도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광대들도 과거 때면 서울로 몰려와서 노래를 했다는 사실로 보아 판소리가 양반층의 청중을 중요하게 여겼으며, 또 양반층이 광대들의 후견인 노릇을 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양반들이 판소리를 감상하는 수준도 대단히 높았으며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판소리의 사설이 전아한 내용으로 변모하기도 하고 곡조도 세련되어 갔다.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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