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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

 

불가사리는 ‘불가살(不可殺)’에 접미사 ‘-이’가 붙은 파생 명사로 볼 신화 〔불사〕쇠를 먹는다는 상상의 동물이다. 나무꾼은 왕에게 도성 한복판에 쇠를 모아 달라고 청하였다.불가사리의 어원 및 역사 불가사리의 어원은 가상적 동물의 이름, 이미 있었던 그러나 지금은 흘러가 버린 철기 이전의 원초 시대를 인류의 황금 시대로 동경하는 심리이다. 다음과 같은 구전 설화가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것을 ‘不可殺伊’라고 불렀다. 이와 같은 전승 설화는,, 처음에는 주변에서 보는 동물(강아지, 전쟁의 도구인 철(鐵)을 말살한다는 발상은, 송도에 불가사리가 나타나 고려왕조에 큰 타격을 입힌다. 승려는 글 쓴 종이 쪽지를 주면서 “훗날 볼 때가 있으리라. 이와 함께 몸도 커 가는데, 입안에서 바늘을 굴렸더니 개미 모양의 벌레가 생겨 쇠를 먹는다. 또 (신돈이 여동생에게 맡기고 간)봉투 안에서 나온 빈대 같은 벌레가 쇠를 먹었고, 화살과 도끼가 부러지고 휘어져, 그 승려는 밥풀을 뭉쳐 무엇인가를 만들었는데, ‘송도(松都) 말년 ......

 

 

Index & Contents

불가사리의 어원 및 역사

 

불가사리의 어원은 가상적 동물의 이름, ‘송도(松都) 말년(末年)의 불가사리’라는 속담이 전하고 있습니다. ‘송남잡지(松南雜識)’에 “송도 말년에 어떤 것이 쇠를 다 먹어 치워서 죽이려 했으나, 죽일 수 없어서 불가살(不可殺)이라 이름을 붙였다.”는 기록이 보입니다. 이 기록을 따르면, 불가사리는 ‘불가살(不可殺)’에 접미사 ‘-이’가 붙은 파생 명사로 볼

 

신화

〔불사〕쇠를 먹는다는 상상의 동물이다. 도검(刀劍)으로는 죽일 수 없고, 거꾸로 도검을 먹어 버린다고 하였다. “죽일 수 없다〔不可殺〕.`는 데서 ‘불가사리’라 이름하였다.

가난한 과부가 바느질로 업을 삼으며 살았다. 여름에 몸을 간지럽히는 딱정벌레를 손끝으로 집어서 바늘로 건드리니, 냉큼 삼켜 버렸다. 벌레는 쇠붙이를 주는 대로 먹더니, 나중에는 돌아다니며 집 안의 쇠붙이를 모조리 먹어 버렸다. 점점 자라서 큰 개만해지고, 끝내 집을 떠나 온 나라 안을 돌아다니면서 쇠붙이란 쇠붙이는 다 먹어 치웠다. 나라에서는 군사를 동원하여 죽이려 했으나, 어떤 무기로도 죽일 수 없었다. 그래서 불사(不死)의 동물 또는 불사를 상징하게 되었다.

〔철 문화의 부정, 원초 회귀〕일련의 서사물(敍事物)에서는 불가사리의 출현과 기능이 다양하게 형상화되어 있다. 즉, “불가사리가 나타나 감옥 문의 쇠붙이를 먹음으로써 갇혔던 사람〔辛旽〕이 탈출하거나, 입안에서 바늘을 굴렸더니 개미 모양의 벌레가 생겨 쇠를 먹는다. 또 (신돈이 여동생에게 맡기고 간)봉투 안에서 나온 빈대 같은 벌레가 쇠를 먹었고, (중이)심심풀이로 밥풀을 만지작거려 만든 작은 벌레 모양의 것이 쇠를 먹었다.” 등이다.

이와 같은 전승 설화는, 당초에는 쇠붙이를 먹는 한낱 작은 벌레였던 것이 점차 무차별로 쇠를 먹어 치우는, ‘불가사리’라는 위협적인 괴물이 됨을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서, 전쟁의 도구인 철(鐵)을 말살한다는 발상은, 일류가 감행하는 전쟁이라는 이름의 살육 행위에 대한 혐오와 부정이라는 무의식을 내포한다. 즉, 문명의 징표처럼 인식된 철기문화(鐵器文化)라는 기존 관념에 대한 부정과 함께, 이미 있었던 그러나 지금은 흘러가 버린 철기 이전의 원초 시대를 인류의 황금 시대로 동경하는 심리이다. 이 불가사리는 철기를 극복하고 나올 새로운 문화의 시대를 지향하는 무의식의 소산이다.

〔질서의 개편〕불가사리는 당초에 곤충과 같은 하찮은 벌레였으나, 바늘을 먹기 시작하면서 쇠를 먹어 치운다. 이와 함께 몸도 커 가는데, 처음에는 주변에서 보는 동물(강아지, 말)에 비유되었으나, 나중에는 “집채만큼, 산만큼 커졌다.” 하는 식으로 무한하게 큼을 암시했다.

압제자의 수단이자 왕권의 방패인 철기(무기)의 철저한 말살을 의미하는 불가사리의 ‘식철(食鐵)’은, 사회 질서의 전면적인 개편이나 통치 체제의 교체 등을 상징한다. 실제로 소설에서는, 송도에 불가사리가 나타나 고려왕조에 큰 타격을 입힌다. 그런 후에 고려가 무너지고 새 왕조(조선)가 들어서자, 불가사리는 감쪽같이 자취를 감춘다.[黃浿江]

 

무속·민속

〔벽사의 대상 및 도구〕‘火不可殺伊〔불-가살-이〕’는 불로 죽일 수 있다는 데서 온 이름이다. 다음과 같은 구전 설화가 있다.

불교가 탄압 받던 시대에, 한 승려가 여동생의 집에 숨어 있었다. 상금에 눈먼 여동생이 오빠를 관가에 고발하려다가 나무꾼 남편에게 죽음을 당했다. 다음날에 나무꾼이 밥을 차려주니, 그 승려는 밥풀을 뭉쳐 무엇인가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늘을 주워 먹었다. 그러자 ‘이 중생이 나타남도 부처님의 뜻’이라며 염불을 했다. 그것은 쇠붙이를 먹으면서 점점 커졌다. 승려는 글 쓴 종이 쪽지를 주면서 “훗날 볼 때가 있으리라.”하고 떠났다. 그것은 집의 쇠를 다 먹고 산으로 달아났는데, 밤이면 마을에 내려와 쇠붙이와 솥을 먹었다. 사람들이 잡으려고 했으나, 잡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곰만큼 커졌다. 마을의 쇠붙이를 다 먹자, 도성 안으로 들어갔다. 쇠붙이가 없어지기 시작하자, 도성은 큰 혼란에 빠졌다. 왕은 그것을 잡도록 명을 내렸으나, 잡으러 간 군사들의 칼과 창, 화살과 도끼가 부러지고 휘어져, 끝내는 먹이가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것을 ‘不可殺伊’라고 불렀다. 나라에서는 방을 써 붙여 용사를 구하였다. 사냥에 참여하였던 나무꾼이, 하루는 무심코 승려가 주고 간 쪽지를 펴보았다. 거기에는 “不可殺伊, 火可殺伊(불가사리는 불로 죽일 수 있다).”라고 씌어 있었다. 나무꾼은 왕에게 도성 한복판에 쇠를 모아 달라고 청하였다. 밤에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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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일 수 없다〔不可殺〕. 그래서 사람들은 이것을 ‘不可殺伊’라고 불렀다. 그런 후에 고려가 무너지고 새 왕조(조선)가 들어서자, 불가사리는 감쪽같이 자취를 감춘다.`는 데서 ‘불가사리’라 이름하였다. 승려는 글 쓴 종이 쪽지를 주면서 “훗날 볼 때가 있으리라. 밤에 불.” 등이다.”하고 떠났다. 〔질서의 개편〕불가사리는 당초에 곤충과 같은 하찮은 벌레였으나, 바늘을 먹기 시작하면서 쇠를 먹어 치운다. 사냥에 참여하였던 나무꾼이, 하루는 무심코 승려가 주고 간 쪽지를 펴보았다. 그것은 집의 쇠를 다 먹고 산으로 달아났는데, 밤이면 마을에 내려와 쇠붙이와 솥을 먹었다. 실제로 소설에서는, 송도에 불가사리가 나타나 고려왕조에 큰 타격을 입힌다. 불가사리의 어원 및 역사 DownLoad CB . 나라에서는 군사를 동원하여 죽이려 했으나, 어떤 무기로도 죽일 수 없었다.” 하는 식으로 무한하게 큼을 암시했다. 가난한 과부가 바느질로 업을 삼으며 살았다. 나라에서는 방을 써 붙여 용사를 구하였다.`는 데서 ‘불가사리’라 이름하였다. 나라에서는 군사를 동원하여 죽이려 했으나, 어떤 무기로도 죽일 수 없었다. 이 기록을 따르면, 불가사리는 ‘불가살(不可殺)’에 접미사 ‘-이’가 붙은 파생 명사로 볼 신화 〔불사〕쇠를 먹는다는 상상의 동물이다. 불가사리의 어원 및 역사 DownLoad CB . 거기에는 “不可殺伊, 火可殺伊(불가사리는 불로 죽일 수 있다). 불가사리의 어원 및 역사 DownLoad CB . 불가사리의 어원 및 역사 DownLoad CB . 여기서, 전쟁의 도구인 철(鐵)을 말살한다는 발상은, 일류가 감행하는 전쟁이라는 이름의 살육 행위에 대한 혐오와 부정이라는 무의식을 내포한다. 이 기록을 따르면, 불가사리는 ‘불가살(不可殺)’에 접미사 ‘-이’가 붙은 파생 명사로 볼 신화 〔불사〕쇠를 먹는다는 상상의 동물이다. 쇠붙이가 없어지기 시작하자, 도성은 큰 혼란에 빠졌다. 사람들이 잡으려고 했으나, 잡을 수가 없었다. 즉, 문명의 징표처럼 인식된 철기문화(鐵器文化)라는 기존 관념에 대한 부정과 함께, 이미 있었던 그러나 지금은 흘러가 버린 철기 이전의 원초 시대를 인류의 황금 시대로 동경하는 심리이다. 이와 함께 몸도 커 가는데, 처음에는 주변에서 보는 동물(강아지, 말)에 비유되었으나, 나중에는 “집채만큼, 산만큼 커졌다. 그런 후에 고려가 무너지고 새 왕조(조선)가 들어서자, 불가사리는 감쪽같이 자취를 감춘다. 가난한 과부가 바느질로 업을 삼으며 살았다.”하고 떠났다. “죽일 수 없다〔不可殺〕. 그것은 쇠붙이를 먹으면서 점점 커졌다. 또 (신돈이 여동생에게 맡기고 간)봉투 안에서 나온 빈대 같은 벌레가 쇠를 먹었고, (중이)심심풀이로 밥풀을 만지작거려 만든 작은 벌레 모양의 것이 쇠를 먹었다. 불가사리의 어원 및 역사 DownLoad CB . 〔철 문화의 부정, 원초 회귀〕일련의 서사물(敍事物)에서는 불가사리의 출현과 기능이 다양하게 형상화되어 있다. 압제자의 수단이자 왕권의 방패인 철기(무기)의 철저한 말살을 의미하는 불가사리의 ‘식철(食鐵)’은, 사회 질서의 전면적인 개편이나 통치 체제의 교체 등을 상징한다. 여름에 몸을 간지럽히는 딱정벌레를 손끝으로 집어서 바늘로 건드리니, 냉큼 삼켜 버렸 상금에 눈먼 여동생이 오빠를 관가에 고발하려다가 나무꾼 남편에게 죽음을 당했다. 마을의 쇠붙이를 다 먹자, 도성 안으로 들어갔다. 점점 자라서 큰 개만해지고, 끝내 집을 떠나 온 나라 안을 돌아다니면서 쇠붙이란 쇠붙이는 다 먹어 치웠다. 불가사리의 어원 및 역사 DownLoad CB . 도검(刀劍)으로는 죽일 수 없고, 거꾸로 도검을 먹어 버린다고 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것을 ‘不可殺伊’라고 불렀다. 그러자 ‘이 중생이 나타남도 부처님의 뜻’이라며 염불을 했다.”라고 씌어 있었다.”라고 씌어 있었다. ‘송남잡지(松南雜識)’에 “송도 말년에 어떤 것이 쇠를 다 먹어 치워서 죽이려 했으나, 죽일 수 없어서 불가살(不可殺)이라 이름을 붙였다.. 이 불가사리는 철기를 극복하고 나올 새로운 문화의 시대를 지향하는 무의식의 소산이다. 사냥에 참여하였던 나무꾼이, 하루는 무심코 승려가 주고 간 쪽지를 펴보았다. 〔철 문화의 부정, 원초 회귀〕일련의 서사물(敍事物)에서는 불가사리의 출현과 기능이 다양하게 형상화되어 있다. 불가사리의 어원 및 역사 DownLoad CB . 불가사리의 어원 및 역사 DownLoad CB . 압제자의 수단이자 왕권의 방패인 철기(무기)의 철저한 말살을 의미하는 불가사리의 ‘식철(食鐵)’은, 사회 질서의 전면적인 개편이나 통치 체제의 교체 등을 상징한다. 벌레는 쇠붙이를 주는 대로 먹더니, 나중에는 돌아다니며 집 안의 쇠붙이를 모조리 먹어 버렸다.”는 기록이 보입니다. 〔질서의 개편〕불가사리는 당초에 곤충과 같은 하찮은 벌레였으나, 바늘을 먹기 시작하면서 쇠를 먹어 치운다. 쇠붙이가 없어지기 시작하자, 도성은 큰 혼란에 빠졌다. 불가사리의 어원 및 역사 DownLoad CB . ‘송남잡지(松南雜識)’에 “송도 말년에 어떤 것이 쇠를 다 먹어 치워서 죽이려 했으나, 죽일 수 없어서 불가살(不可殺)이라 이름을 붙였다. 마을의 쇠붙이를 다 먹자, 도성 안으로 들어갔다. 밤에 불. 도검(刀劍)으로는 죽일 수 없고, 거꾸로 도검을 먹어 버린다고 하였다. 점점 자라서 큰 개만해지고, 끝내 집을 떠나 온 나라 안을 돌아다니면서 쇠붙이란 쇠붙이는 다 먹어 치웠다. 이와 같은 전승 설화는, 당초에는 쇠붙이를 먹는 한낱 작은 벌레였던 것이 점차 무차별로 쇠를 먹어 치우는, ‘불가사리’라는 위협적인 괴물이 됨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은 집의 쇠를 다 먹고 산으로 달아났는데, 밤이면 마을에 내려와 쇠붙이와 솥을 먹었다.”는 기록이 보입니다. 여기서, 전쟁의 도구인 철(鐵)을 말살한다는 발상은, 일류가 감행하는 전쟁이라는 이름의 살육 행위에 대한 혐오와 부정이라는 무의식을 내포한다. 그래서 불사(不死)의 동물 또는 불사를 상징하게 되었다. 왕은 그것을 잡도록 명을 내렸으나, 잡으러 간 군사들의 칼과 창, 화살과 도끼가 부러지고 휘어져, 끝내는 먹이가 되었다. 나라에서는 방을 써 붙여 용사를 구하였다. 상금에 눈먼 여동생이 오빠를 관가에 고발하려다가 나무꾼 남편에게 죽음을 당했다. 불교가 탄압 받던 시대에, 한 승려가 여동생의 집에 숨어 있었다. 거기에는 “不可殺伊, 火可殺伊(불가사리는 불로 죽일 수 있다).” 등이다.불가사리의 어원 및 역사 DownLoad CB . 즉, “불가사리가 나타나 감옥 문의 쇠붙이를 먹음으로써 갇혔던 사람〔辛旽〕이 탈출하거나, 입안에서 바늘을 굴렸더니 개미 모양의 벌레가 생겨 쇠를 먹는다. 다음날에 나무꾼이 밥을 차려주니, 그 승려는 밥풀을 뭉쳐 무엇인가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늘을 주워 먹었다. 여름에 몸을 간지럽히는 딱정벌레를 손끝으로 집어서 바늘로 건드리니, 냉큼 삼켜 버렸.[黃浿江] 무속·민속 〔벽사의 대상 및 도구〕‘火不可殺伊〔불-가살-이〕’는 불로 죽일 수 있다는 데서 온 이름이다. 다음과 같은 구전 설화가 있다. 사람들이 잡으려고 했으나, 잡을 수가 없었다. 이와 함께 몸도 커 가는데, 처음에는 주변에서 보는 동물(강아지, 말)에 비유되었으나, 나중에는 “집채만큼, 산만큼 커졌다. 다음과 같은 구전 설화가 있다. 승려는 글 쓴 종이 쪽지를 주면서 “훗날 볼 때가 있으리라.[黃浿江] 무속·민속 〔벽사의 대상 및 도구〕‘火不可殺伊〔불-가살-이〕’는 불로 죽일 수 있다는 데서 온 이름이다. 그것은 곰만큼 커졌다. 또 (신돈이 여동생에게 맡기고 간)봉투 안에서 나온 빈대 같은 벌레가 쇠를 먹었고, (중이)심심풀이로 밥풀을 만지작거려 만든 작은 벌레 모양의 것이 쇠를 먹었다. 이와 같은 전승 설화는, 당초에는 쇠붙이를 먹는 한낱 작은 벌레였던 것이 점차 무차별로 쇠를 먹어 치우는, ‘불가사리’라는 위협적인 괴물이 됨을 이야기하고 있다. 나무꾼은 왕에게 도성 한복판에 쇠를 모아 달라고 청하였다. 그러자 ‘이 중생이 나타남도 부처님의 뜻’이라며 염불을 했다.불가사리의 어원 및 역사 불가사리의 어원은 가상적 동물의 이름, ‘송도(松都) 말년(末年)의 불가사리’라는 속담이 전하고 있습니다. 왕은 그것을 잡도록 명을 내렸으나, 잡으러 간 군사들의 칼과 창, 화살과 도끼가 부러지고 휘어져, 끝내는 먹이가 되었다. 그래서 불사(不死)의 동물 또는 불사를 상징하게 되었다. 나무꾼은 왕에게 도성 한복판에 쇠를 모아 달라고 청하였다. 즉, “불가사리가 나타나 감옥 문의 쇠붙이를 먹음으로써 갇혔던 사람〔辛旽〕이 탈출하거나, 입안에서 바늘을 굴렸더니 개미 모양의 벌레가 생겨 쇠를 먹는다. 다음날에 나무꾼이 밥을 차려주니, 그 승려는 밥풀을 뭉쳐 무엇인가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늘을 주워 먹었다.불가사리의 어원 및 역사 불가사리의 어원은 가상적 동물의 이름, ‘송도(松都) 말년(末年)의 불가사리’라는 속담이 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곰만큼 커졌다. 벌레는 쇠붙이를 주는 대로 먹더니, 나중에는 돌아다니며 집 안의 쇠붙이를 모조리 먹어 버렸다. 그것은 쇠붙이를 먹으면서 점점 커졌다. 불가사리의 어원 및 역사 DownLoad CB . 불가사리의 어원 및 역사 DownLoad CB .. 즉, 문명의 징표처럼 인식된 철기문화(鐵器文化)라는 기존 관념에 대한 부정과 함께, 이미 있었던 그러나 지금은 흘러가 버린 철기 이전의 원초 시대를 인류의 황금 시대로 동경하는 심리이다. 이 불가사리는 철기를 극복하고 나올 새로운 문화의 시대를 지향하는 무의식의 소산이다.” 하는 식으로 무한하게 큼을 암시했다.. 실제로 소설에서는, 송도에 불가사리가 나타나 고려왕조에 큰 타격을 입힌다. 불교가 탄압 받던 시대에, 한 승려가 여동생의 집에 숨어 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