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도 한복(변형되어 표현되었으나)을 입고서 곱게 누워 있다는 소식 앞에선 그렇게 어색해 보일 수가 없다. 무대 위에서 십자가와 신부는 무게를 잃고 우스꽝스럽게 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저고리의 적갈색은 검은 색과 영 어울리지를 않는다. 그 곳은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 놓은 신의 영역이다. 물론 그것은 극단 목화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어떤 정체성을 가지는가와 직결되는 문제이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극적 구조의 보편성을 한국화 시키기 위해서 한복이라든가 전통 섬유,, 그는 코트와 비슷한 옷을 입고 있다.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고 극단 목화의 오태석이 새롭게 연출한 한국판 `로미오와 줄리엣` 연극을 감상하고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만난 로미오와 줄리엣은 단 하나의 씬도 바꾸지 않은 셰익스피어의 원작 그대로지만 전혀 다른 작품으로 보였다. 오태석이 이번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을 시대적 공간으로 명확히 구분 지은 것으로 보여지지는 않는다.. 특히 성당을 배경으로 한 ......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고
극단 목화의 오태석이 새롭게 연출한 한국판 `로미오와 줄리엣` 연극을 감상하고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만난 로미오와 줄리엣은 단 하나의 씬도 바꾸지 않은 셰익스피어의 원작 그대로지만 전혀 다른 작품으로 보였다.
오태석이 이번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을 시대적 공간으로 명확히 구분 지은 것으로 보여지지는 않는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극적 구조의 보편성을 한국화 시키기 위해서 한복이라든가 전통 섬유, 동양적 색채를 이용한 다양한 소품과 조명에 신경을 쓴 것으로 보이는데, 마치 서양인이 양복 위에 갓을 쓴 것처럼 어색한 부분이 더러 있다. 특히 성당을 배경으로 한 장면이 그렇다. 신부님은 분명 신부복을 입고 있는데, 그 위에 저고리를 걸치고 있다. (게다가 그 저고리의 적갈색은 검은 색과 영 어울리지를 않는다.) 그 어색함은 순간 극의 신선함을 깨트리고 만다. 서양에서 `성당`이라는 공간은 특별하다. 그 곳은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 놓은 신의 영역이다. 따라서 그들 고유의 종교적인 표현과 엄숙함이 셰익스피어의 원작에는 대사 속에 그대로 스며 있다. 때문에 성당의 공간 또한 한국의 정서를 드러내는 종교 공간으로 바꾸어 놓았다면 더 좋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무대 위에서 십자가와 신부는 무게를 잃고 우스꽝스럽게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극단 목화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어떤 정체성을 가지는가와 직결되는 문제이다.
같은 맥락에서 짚어볼 수 있는 문제점이 두 가지 정도 더 있다. 의상의 통일 문제가 첫 번째이고 한병춘(로미오의 절친한 친구역)의 죽음의 문제가 두 번째이다. 문희순(로미오)이 구영남(줄리엣)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달받는 장면, 그는 코트와 비슷한 옷을 입고 있다. 일반적인 무대 위에선 전혀 아무렇지도 않았을 그의 코트가 붉은 천과 사랑하는 여자, 그것도 한복(변형되어 표현되었으나)을 입고서 곱게 누워 있다는 소식 앞에선 그렇게 어색해 보일 수가 없다. 과감히 문화적 경계를 지운 의상을 활용했더라면 오히려 더 시각적으로 아름답지 않았을까.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고 Up DR . 특히 성당을 배경으로 한 장면이 그렇다. 그 곳은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 놓은 신의 영역이다. 무대 위에서 십자가와 신부는 무게를 잃고 우스꽝스럽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 곳은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 놓은 신의 영역이다. 서양에서 `성당`이라는 공간은 특별하다.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고 Up DR . 오태석이 이번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을 시대적 공간으로 명확히 구분 지은 것으로 보여지지는 않는다. 때문에 성당의 공간 또한 한국의 정서를 드러내는 종교 공간으로 바꾸어 놓았다면 더 좋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같은 맥락에서 짚어볼 수 있는 문제점이 두 가지 정도 더 있다.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고 Up DR . 일반적인 무대 위에선 전혀 아무렇지도 않았을 그의 코트가 붉은 천과 사랑하는 여자, 그것도 한복(변형되어 표현되었으나)을 입고서 곱게 누워 있다는 소식 앞에선 그렇게 어색해 보일 수가 없다.) 그 어색함은 순간 극의 신선함을 깨트리고 만다.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고 극단 목화의 오태석이 새롭게 연출한 한국판 `로미오와 줄리엣` 연극을 감상하고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만난 로미오와 줄리엣은 단 하나의 씬도 바꾸지 않은 셰익스피어의 원작 그대로지만 전혀 다른 작품으로 보였다... 일반적인 무대 위에선 전혀 아무렇지도 않았을 그의 코트가 붉은 천과 사랑하는 여자, 그것도 한복(변형되어 표현되었으나)을 입고서 곱게 누워 있다는 소식 앞에선 그렇게 어색해 보일 수가 없다.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고 Up DR .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고 Up DR .) 그 어색함은 순간 극의 신선함을 깨트리고 만다.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고 Up DR . 특히 성당을 배경으로 한 장면이 그렇다.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고 Up DR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고 극단 목화의 오태석이 새롭게 연출한 한국판 `로미오와 줄리엣` 연극을 감상하고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만난 로미오와 줄리엣은 단 하나의 씬도 바꾸지 않은 셰익스피어의 원작 그대로지만 전혀 다른 작품으로 보였다. 신부님은 분명 신부복을 입고 있는데, 그 위에 저고리를 걸치고 있 따라서 그들 고유의 종교적인 표현과 엄숙함이 셰익스피어의 원작에는 대사 속에 그대로 스며 있다. 무대 위에서 십자가와 신부는 무게를 잃고 우스꽝스럽게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극단 목화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어떤 정체성을 가지는가와 직결되는 문제이다. 오태석이 이번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을 시대적 공간으로 명확히 구분 지은 것으로 보여지지는 않는다.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고 Up DR .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극적 구조의 보편성을 한국화 시키기 위해서 한복이라든가 전통 섬유, 동양적 색채를 이용한 다양한 소품과 조명에 신경을 쓴 것으로 보이는데, 마치 서양인이 양복 위에 갓을 쓴 것처럼 어색한 부분이 더러 있다.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고 Up DR . 물론 그것은 극단 목화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어떤 정체성을 가지는가와 직결되는 문제이다. 같은 맥락에서 짚어볼 수 있는 문제점이 두 가지 정도 더 있다. 과감히 문화적 경계를 지운 의상을 활용했더라면 오히려 더 시각적으로 아름답지 않았을까. 서양에서 `성당`이라는 공간은 특별하다. 문희순(로미오)이 구영남(줄리엣)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달받는 장면, 그는 코트와 비슷한 옷을 입고 있다.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고 Up DR . 의상의 통일 문제가 첫 번째이고 한병춘(로미오의 절친한 친구역)의 죽음의 문제가 두 번째이다. 문희순(로미오)이 구영남(줄리엣)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달받는 장면, 그는 코트와 비슷한 옷을 입고 있다. 때문에 성당의 공간 또한 한국의 정서를 드러내는 종교 공간으로 바꾸어 놓았다면 더 좋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의상의 통일 문제가 첫 번째이고 한병춘(로미오의 절친한 친구역)의 죽음의 문제가 두 번째이다.. 신부님은 분명 신부복을 입고 있는데, 그 위에 저고리를 걸치고 있. 과감히 문화적 경계를 지운 의상을 활용했더라면 오히려 더 시각적으로 아름답지 않았을까.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극적 구조의 보편성을 한국화 시키기 위해서 한복이라든가 전통 섬유, 동양적 색채를 이용한 다양한 소품과 조명에 신경을 쓴 것으로 보이는데, 마치 서양인이 양복 위에 갓을 쓴 것처럼 어색한 부분이 더러 있다. (게다가 그 저고리의 적갈색은 검은 색과 영 어울리지를 않는다. 따라서 그들 고유의 종교적인 표현과 엄숙함이 셰익스피어의 원작에는 대사 속에 그대로 스며 있다.. (게다가 그 저고리의 적갈색은 검은 색과 영 어울리지를 않는다.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고 Up DR .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고 Up DR.